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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것의 주인이기를 원한다

우리는 모든 것의 주인이기를 원한다 책 표지


우리는 모든 것의 주인이기를 원한다
브루스 후드
알에이치코리아(RHK) 출판
Possessed : Why We Want More Than We Need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욕망하지 않으면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토록 왜 무언가를 갖기 위해 욕망하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심리학자가 쓴 ‘우리는 모든 것의 주인이기를 원한다’는 소유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소유와 관련한 문화, 인간 심리까지 다뤄 소유에 관한 모든 메커니즘을 깨닫기에 충분한 책이 되어준다.

특히 점유와 소유, 뱅크시, 체험에 관한 글은 주목할 만하다.
그중 뱅크시 작품에 관한 일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뱅크시 작품

철거 예정이었던 쓸모없는 벽이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귀중한 물건이 되었다. 법원은 이 그라피티의 정당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판결해야 했다.

이것을 벽에 그린 화가가가 주인인가?
아니면 토지를 소유한 회사인가?
아니면 그림을 발견한 인부들인가?
아니면 작품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상당한 수고를 한 미술관의 것인가?

일반 대중은 뱅크시가 누구이고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도 못하며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노동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의 작품은 누구의 것인가?

그는 공개적인 미술품을 제작할 때마다 소유권이 확립되는 방식에 내재한 긴장 관계를 드러낸다.
뱅크시는 자신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실제 노동이 담긴 지식 재산권을 확립한 다음, 자기 노력의 산물을 직접 내팽개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소유권을 두고 다투게 만든다.

우리는 모든 것의 주인이기를 원한다 책의 본문

“재산의 필수 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심상, 그림, 가시적 특성 같은 것은 없다. 이것은 물질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이것은 마음의 개념일 뿐이다.”

제러미 벤담

뱅크시의 모든 창작물은 소유권이 인간 마음의 산물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벤담의 격언을 상기시킨다.



그렇듯 소유권은 복잡한 문제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했듯 “독창적 아이디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아이디어는 다른 누군가가 먼저 생각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뿐 아니라 살면서 이루는 모든 성취에는 한 사람의 많은 노력과 의도가 들어간다.
그것이 설령 어린아이의 작은 성취, 노력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어린 딸들의 그림으로 장식된 우리 집 부엌은 외부 관찰자의 눈에는 구불구불한 선으로 가득한 허접 쓰레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작품’에는 많은 노력과 의도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내 동료 멜리사 프리슬러가 주장한 것처럼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솜씨가 아니라 의도다.
예술을 정의하는 것은 창작자의 의도이며, 이것은 두 살 된 아이도 이해하는 것이다.
의도, 목표, 노력은 재산 분쟁에 대한 파정을 요청받았을 때 소유권에 관한 결정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모든 소유는 ‘정당’하다.
하지만 소유는 불평등을 낳고 끝없는 소유의 추구 또한 충족되는 법이 없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하면 사람은 그 이상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는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많이 가지면 행복해질 거라고 여긴다.

물론 어떤 사람은 소비하지 않고 체험을 한다.
당연히 과시적인 소비보다는 경험을 남기는 체험이 이롭다.
하지만 체험 또한 때때로 사회에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저자는 일러준다.


오늘날 소유보다 체험에 돈을 쓸 때 더 큰 만족을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연구가 존재한다.
그러나 무게 중심이 체험으로 이동했다고 해서 소비 자체가 감소한 것은 아니다.

호텔이 얼마나 낭비가 심하고 비효율적인 공간인지 생각해 보라.

여행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미국 호텔에서는 매일 200만 개의 비누가 허비되고, 환대산업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50퍼센트는 음식물 쓰레기이며, 연간 비용은 2,180억 달러에 달한다.


결국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동물인 점유의 본성에서 비롯됐으나 오늘날의 인간에게 소유는 사회적 신분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처럼 보인다.

“물건을 구매하든 체험을 구매하든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뭔가를 찾는다.”

그렇다고 해서 소비하지도 않고 무언가를 소유하지도 않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사회는 점점 경쟁하며 발전해오기도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도 없다.
그러나 문화권에 따라 소비는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수직 구조의 문화권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아 구성이 독립적이든 집단주의적이든 상관없이 과시 소비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추구한다.
반면에 수평 구조를 가진 문화는 과시 소비, 자랑질, 과시 등을 혐오하고 겸손을 장려하며 ‘양귀비 자르기’를 시도할 확률이 높다.

이를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한국 사회는 수직구조로 과시 소비 경향이 짙은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분명 소유가 자신의 성취, 노력의 산물일지라도 과도하게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한 과시 소비로서 남용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모든 내용은 하나로 모아진다.

우리는 모든 것의 주인이기를 원한다 표지 그림

“중요한 것은 어떻게 더 많이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이미 가진 것으로 어떻게 만족할 것인가다.”

그 또한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러한 만족 또한 스스로의 성취로 대할 수 있다면 소유의 욕망 또한 절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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